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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준우 칼럼] 누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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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죄의 기준은 법이다.

 

공동 관심사를 조정하고 보편적 평온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 연방 정부를 수립하려면, 정부의 보호 및 관리/감독에 맡겨질 대상과 관련해 헌법안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원칙과 반대되는 원칙 위에 연방 정부가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 정부는 정부의 힘을 시민 개개인에게까지 확장해야만 한다. 연방 정부는 중간에 게재하는 어떤 입법의 도움 없이도 성립해야 하며, 연방 정부의 결정을 집행할 상임 집행관이라는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중앙 권위의 통치권이 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표명되어야만 한다.

 

-연방주의자(Federalist) 17권, 제4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 외 4인

 

국가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법은 죄의 경계선을 지었다. 법이 없다면 죄는 죄로 성립될 수 없고, 법이 있다면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죄가 된다. 국가 사법체제 아래에서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은 없다. 법이 있기에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형성된다.

 

오레스테스의 죄는 친족살인이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 오레스테스는 그들을 죽인 친족살해범이다. 반인륜적 행위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국가정치체제인 폴리스 police와 친족, 가족, 혈연관계인 오이코스 oicos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며, 오레스테스의 친모살인죄를 두고 공방전을 펼치는 배심원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뒤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자 그의 아들은 오레스테스와 누이인 엘렉트라는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어머니와 정부를 죽이고 난 뒤 오레스테스는 아테나이에서 아테네 여신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인류사회에서 법은 정의의 실현과 정당성 부여를 위한 권력과 통제의 권한을 갖는다. 독특하게도 <자비로운 여신들>에서는 인간의 법, 혹은 보편적 진리와 사실에 대한 고찰을 장려하기보다는 아테네라는 신에 의한 직접적인 판결이 내려진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신의 직접적 개입Deus ex machina'라고 부른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Philon, B.C25~A.D50, 고대 유대인 철학자)은 신을 두고 "신은 선한 것보다 더 선하며 완전한 것보다 더 완전하다(Er ist besser als gut, vollkommener als vollkommen)"고 이야기한 바 있다. 결국 신의 존재유무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의 뜻과 의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닿을 수 없는 완전한 세계에 속해있다는 점에서, 아테네가 내린 친모살인에 대한 무죄 판결은 신의 직접적인 판결이며 인간의 법보다 우위에 있는 절대적 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소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테네의 무죄 판결이 절대적으로 옮거나 신이 내린 판결의 온전함을 주장하는 작품이라고 단정 짓기엔 위험할 수 있다. 아테네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인간들이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사건은 너무나 중대하다. 그렇기에 극심한 분노를 불러일으킬 이 사건을 심판할 권한은 나에게도 없다. 다만 그대(오레스테스)는 관습에 따라 이미 정화되어 아무런 해가 없는 탄원자로 나의 집에 왔노니, 내가 그대를 받아들이겠다.(중략) 사건이 이미 나에게 떨어졌으니, 나는 선서를 하되 절대 불의한 마음으로 선서를 어기지 않을 사건의 재판관들을 선정하여 영원히 그 법규를 세워갈 것이다.

 

-아테네의 대답, 자비로운 여신들 470-484행

 

본 작품 속에서 여신 아테네의 개입은 인간(오레스테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 상황을 해석하고 해결해 내는 능력자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이어야 했는가에 대해 가부동수가 나온 상황에서 아테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두고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하며 맞대응하는 복수의 여신들이 자비로운 여신들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아테네의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내 임무다. 나는 오레스테스를 위해 이 투표석을 던진다. 나에게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진심으로 남자 편이며, 온전히 아버지의 편이다. 그래서 나는 여인의 죽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집안의 가장인 남편을 죽였기 때문이다. 투표가 가부 동수라도 오레스테스가 이긴 것이다.

 

-아테네의 판결, 자비로운 여신들 734-741행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지금보다 미미했을 거라는 평가는 이해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전쟁이 일상이었기에 강한 힘과 권력으로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남성의 권한이 더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우월주의를 이야기하는 듯한 아테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았을 수는 있으나, 전쟁과 정치, 권력을 제외한 부분에서의 재능, 역량, 가능성에 있어서는 남성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작품에서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전쟁영웅인 아가멤논을 살해한 친족살인의 첫 번째 피의자로 등장하긴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아내이자 정절의 상징인 페넬로페와 달리 용기 있고 대담한 여성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이자 오레스테스의 누나인 엘렉트라 역시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을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유발함으로써 결정적인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 역시 희생제물로 바쳐졌지만, 이후 재구성된 작품(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에 의해 신전의 여사제로 봉사하는 역할로 등장함으로써 그리스 비극 작품 속 남성이 결코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는 않는다. 심지어 아테네와 아르테미스는 여신 아닌가!

 

유한 성격에 세상만사에 별로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나에 비해, 아내는 트집을 잘 잡으며 말에 졸하다. 말로 여러 사람 죽이는 모습을 꽤 많이 봐왔다. 반면 생각이 복잡한 나에 비해 단순한 아내는 일처리 능력치만 두고 봤을 때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덧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엘렉트라 같은 아내보다는 페넬로페 같은 아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전준우

 

작가, 강연가, 책쓰기컨설턴트

前국제대안고등학교 영어교사

[한국자살방지운동본부]

[한국청소년심리상담센터] 채널운영자

[전준우책쓰기아카데미] 대표

 

[저서]

배우론

교육의 힘

탁월한 책쓰기

초성장 독서법

하루 10분 부모연습 (가제 : 부모가 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