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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석기 칼럼] 한심한 강의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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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만으로는 병든 사회를 고칠 수 없다(Science alone can’t heal a sick society. Jay S. Kaufman)”는 2021. 9. 11. 자 뉴욕타임즈 칼럼이다.

 

적극 공감하면서 두어 번 읽었다.

 

마스크를 거부하는 사람, 백신 접종을 거절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의학의 힘을 의심하거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가는, “일부 질병관리 담당 공직자나 정치꾼들”이 많은 국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조심하고 주의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잘 정리되어 있다.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거나 국가가 패망의 길로 들어 섰다면 어찌 과학과 의학으로 치유할 수 있겠는가?

 

고대 로마 그리스 시대로부터 문법학, 수사학(修辭學), 철학과 천문학, 윤리와 도덕 등을 골고루 가르쳤다. 요즘도 가끔 펼쳐 보는 빨간 책, 1962년 뉴욕에서 출간한 “과학의 역사(A History of the Science, Stephen F. Mason)에는 로마 그리스시대의 자연 철학자들로부터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리적 우주론(Physical Cosmology)과 피타고라스의 평균율은 물론,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맞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움(the Lyceum)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수학과 철학, 과학과 문학은 각각 다른 학문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필자가 최고경영자과정에 자주 강의를 가는 경남대학교 대강당 이름이 “Lyceum” 이다.  

 

국어 영어 수학만 잘 하면 된다고 몰아 붙이거나, 윤리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고 무시하는 건 교육이 아니다.

 

특히 문과 이과를 나누어 가르치고, 쉽고 재미있는 과목만 인기가 있다는 것은 “교육철학이 없는 허깨비들”의 강도 같은 짓이다.

 

독일의 대문호(大文豪) 괴테가 건네 준 시(詩), “에그먼트”를 읽은 베토벤이 웅장한 음악으로 “에그먼트 서곡”을 작곡했듯이, 법대를 다니면서 화실(畵室)에서 일을 하던 구스타브 클림트가 법률 공부를 중단하고 미술을 공부했듯이, 인간은 저마다의 타고난 자질과 환경에 의해 다양한 인격체로 성장하고, 서로 다른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도우면서 사회는 발전한다.

 

윤리 도덕을 무시하고, 언어의 품격을 망각한 채, 법률만 공부했거나 가벼운 권모술수에만 능한 사람들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시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걸 보면서 교육의 영향력을 생각한다.

 

특히, “그 대학 수준이 겨우 그 수준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게 뭘까?” 진짜 궁금하다.

 

그래서 교육부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초등학생들부터 바보로 만들고 중고교에서는 멍청한 도깨비로 만들면서 훌륭한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어렵고 지겨운 것도 쉽고 재미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강의기술(Teaching & Lecturing Skills)이 필요하다.

 

잠자는 학생들의 꿈을 깨워 줄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Skills)이 필요한데, 하품하는 학생들을 외면하면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과 교수들의 무책임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먼 훗날, 나라가 망한 뒤에 누구 탓을 할게 될지 걱정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