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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준우 칼럼] 리더의 리드는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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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사람을 죽였다. 12명의 배심원이 유죄라고 판결하면 이 소년은 사형 선고를 받는다. 11명이 유죄라고 이야기하고 한 명만이 무죄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영화는 결국 12명 모두 무죄를 선고하게 되고 끝이 난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세상에 태어나서 읽어본 책들 중 가장 훌륭한 책을 꼽으라면 레미제라블이었다. 최근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Iliad로 바뀌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레미제라블처럼 잘 쓴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했다. 정말 멋진 소설이었다.

 

영화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었다.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타이타닉, 오아시스 등등 재미있게 감상한 영화는 많이 있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대부분의 작품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흡사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예술 작품과도 같았기에, 오래전에 출시된 영화라고만 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극 중에서 '소년은 유죄일 수도 있으나, 무죄일 수도 있으므로 성급하게 유죄 판결을 내리긴 이르다.'라고 언급하며 토론을 이끌어간 주인공 데이비스(헨리 폰다)는 건축가 architect였다. 영화가 제작된 1950년대에 건축가라는 직업이 결코 나쁘진 않았겠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비해 논리 정연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토론의 장을 이끌어갈 만한 직업군으로 보기엔 알맞지 않다.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뭘 안다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냐'라고 외치며 불평을 해댔고, 나름의 적절한 논리로 그를 공격했다. 영화는 순조롭지 않고 거칠기까지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1명의 사람들은 모두 유죄에서 무죄를 선언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무죄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주인공은 상당히 논리적인 사고로 문제를 다루었다. 앞뒤 상황을 정확히 유추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대화 중간에 낙서를 하며 딴청을 부리는 사람들과 달리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선별된 단어와 적절한 톤으로 이야기했다.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던 배심원(리 J. 콥스)은 마음에 새겨진 아들에 대한 사랑과 원망으로 아들과 찍은 사진을 찢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며 무죄를 선언하는데, 주인공 데이비스가 혼자 남아 눈물을 추스르는 마지막 배심원에게 재킷을 건네주고 재판소의 방을 둘러보며 영화가 끝이 난다. 배심원 제도를 다룬 법정영화라는 특수성을 제외하면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강한 리더십을 갖춘 리더를 통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다룬 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언젠가 아내가 나에게 "오늘 젊게 입었네?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겠어!"하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대답했고, 금방 잊어버렸다. 4살 차이가 나긴 하지만, 아내는 나와 함께 살면서 나의 모든 모습들을 기억하고 알고 있다. 그렇기에 보이는 범위 안에서 판단할 수는 있다. 패션이야 개인 취향이니 젊고 예쁘게 입고 다닐 수는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도 젊게 보이는 건 아니다. 나이는 감출 수 있고 속일 수 있어도 변함없는 현실을 담고 있다. 어리고 예뻐 보여도 말투, 행동, 옷차림, 걸음걸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 등에서 나이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나이가 드러나거나 생각의 속도가 드러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에 대한 책과 영상은 많다. 리더십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중요하기 때문에 자주 강조하고 이야기한다. 목소리만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처럼 강한 자세와 태도가 리더십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반면에 리더십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리더십을 드러낼 수는 없다. 극 중 주인공 데이비드가 보여준 리더십은 한 명의 생명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초반부터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하던 배심원(리 J. 콥스)의 강한 반대에 수긍해버렸기에 그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아까운 생명의 호흡이 대지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옮기면서 찬찬히 풀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더십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리더십을 가장 잘 정리한 작품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저서인 <갈리아 전쟁기>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신화가 으레 그렇듯이 문학적 작품성을 드높이기 위해 크게 미화되고 부풀려진 데 반해, 3인칭 관점에서 전쟁을 서술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한 <갈리아 전쟁기>에는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던 인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리더십이 세밀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나나미 시오미의 말처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세상을 움직인 게 아니라, 세상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움직인 것이다.

 

반면 반구대 보존 사업단 이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할 때마다 상당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사장님에게 살면서 가장 인상적인,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이 무엇이었나 여쭤보니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맹자였다."하고 대답하셨다. 나와는 비교대상조차 될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의 필력을 가진 이사장님의 글은 최근 한겨레 신문에 기고되었다.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면과 가장 용기 있는 면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위대함과 경솔함의 반복적인 여정이다. 논리적인 사고의 연속적 진행이 없다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건 한 순간이었다. 일리아드에서 위대한 장군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들을 잃고 아킬레우스의 손자를 낳는 비운의 여인이었다. 10여 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겪는 동안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안드로마케는 남자(안드로)를 다스리는 자(마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헥토르는 일리아드를 대표하는 위대한 영웅이었으나 비참한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영웅적 자세를 갖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내 운명을 거슬러 나를 하데스에 보내지 못하오. 그러나 인간들 가운데 누구도 운명은 피하지 못했소. 겁쟁이든 용감한 사람이든 일단 태어난 이상은.    -일리아드 6장 490행

 

에도 시대 초기 무장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적군의 아내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시어머니라고 부르는 비운의 여인에 의해 태어났다. 무장이자 정치가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고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외교관계는 정상화될 수 있었고, 지금의 일본을 만드는 데 초석이 다져졌다.

 

리더라는 존재가 특별하지 않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한다. 화를 내고, 슬퍼하고, 짜증을 내고, 비난하고, 실수를 한다. 그럼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역사 속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는 그들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의 결을 발견하라는 이유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