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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준우 칼럼] Homo Ludens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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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종종 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를 검토해보면, 유명 강사나 주식, 부동산 투자 관련 책들의 판매고가 높다. 50년 전, 30년 전 서점에서 판매고가 가장 높은 책들을 선별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있으며, 출간되는 책들의 종류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이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고 이야기한 소설가 라나와 블랙웰 Lanawa blackwell의 말처럼,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도서의 대부분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수준과 비슷하다고 이해한다면 다소 섣부른 판단이 될까.

 

모든 사람은 늙는다. 사고의 깊이를 넓혀가는 과정을 넓히지 않는다면 30년 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 리스트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복잡하고 난해한 생각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고의 물결을 거치지 않는다면 생각의 수준은 미미한 수준으로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호모 Homo는 현존하는 인류와 그 직계 조상류를 의미한다. 사람과 Species of Human being를 의미하는 단어 호미니데Hominidae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종류를 의미하며 흔히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대형 유인원을 뜻한다. 딱히 이렇다 할 생각의 전환이나 사고의 흐름을 통한 성장과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는 현존하는 인간류를 이야기한다. sapiens는 슬기롭다 wisdom라는 뜻의 라틴어를 의미하는데, 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류 Hominidae와는 다소 구별되는 뜻을 갖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좀 더 나아가면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만들어진다. '공경받는 귀족 계급은 즐거움과 겸양만이 행동화하는 고상한 영역에서 산다.'는 말이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가지고 가야 할 삶의 지침, 즉 호모 루덴스의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한다.

 

Ludens는 놀이, 장난, 경기와 같은 뜻을 지닌 Ludus에서 비롯되는 단어인데, 놀이, 장난을 의미하는 Ludus에 글자를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의 Litterarum을 붙이면 학교 Ludus Litterarum가 된다. 즉 학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Ludus Litterarum의 진짜 의미는 재미있게 놀이하듯이 글자를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Homo가 Ludus Litterarum에서 배워서 깨우친 것을 일상생활에서 즐겁게 써먹을 수만 있다면 Homo Sapiens에 머물지 않고 Homo Ludens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놀이의 개념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직사회에서 필요한 경청, 인내, 겸손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즐겁게 써먹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과는 꽤 거리가 멀다. 오직 인간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초적인 정보만을 가르쳐줄 뿐이다.

 

가르치는 능력이 없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을 만나면 학교생활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자의가 아닌 바에야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과정, 즉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경우에는 예외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내게 연극을 가르쳐주신 추정화 선생님은 “연기를 할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치 세상에서 해탈한 사람인 마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평생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연구하고 무대 위에서 다양한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연극배우로서의 삶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평생 함께 할 놀이를 찾는 것과도 같으므로,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큰 즐거움과 소망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월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음악하는 지인들과 동고동락하는 한 지인은 평생 직업을 찾았다며 그렇게 즐거워할 수 없었다.

 

당시 내게 가르침을 주신 연출가 선생님과 또 다른 지인처럼, 내게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은 일 work이지만 놀이 play에 가깝다. 글 속에는 나의 생각이 녹아있고 관점이 녹아있다는 특징도 있지만, 경청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즘 시대에 평소 하지 못했던 수많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마음껏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놀이,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분야였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즐거움이 큰 것임을 알게 해 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가기엔 세상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학창시절의 공부뿐만 아니라 결혼, 육아,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한 직장생활, 위태로운 사업을 영위해나가는 모든 일들은 적성에 맞거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진행하는 일들에 가깝다.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의 자영업자들, 억지로 하루하루 출근하는 직장인이나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일과 놀이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세상은 지금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며,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다. homo sapiens에 머무르면서 숙제처럼 살 것인지, homo ludens의 삶을 동경하며 축제하듯 살 것인지 결정하는 키는 우리의 손안에 있다.